
고기동에 이사 와서 처음 비가 내렸던 날을 기억한다. 거실 창을 열어 데크에 나갔는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가까이 닿는 곳에서 비가 내리는 기분은 묘했다. 아파트에서는 창문 밖에서 비를 보고, 현관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지 비와 닿는데, 고기동 단독주택에선 그냥 문 하나만 열면 바로 눈과 바람, 비와 닿는다. 하루는 우리 집 데크에 비가 떨어지는데, 마치 비가 내 것처럼 느껴졌다. 자연을 소유한다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너무 가깝게 느껴지다 못해 내가 가진 소유물처럼 느껴졌다. 재밌는 경험이다. 그리고 겪은 눈과 바람. 소유하다 못해 가까운 곳에서 공격을 받기도 한다. 밤 사이 눈과 바람이 한 일이다. 바빠겠다. 그래도 고맙게 한 개씩은 남겨두었다..

고기동의 겨울은 크게 심호흡하고 맞이해야 한다. 고기동의 겨울이 찾아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느 뉴스보다 큰 소식이 된다. 이곳에서의 겨울 준비는 마치 연례행사처럼,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이야기되곤 한다. "올해 겨울 대비 잘 해~"라는 말이 공기 중에 맴돌 때, 그제야 비로소 겨울의 시작을 실감하게 된다. 이사 온 첫해 겨울, 수도관이 얼어붙어 큰 혼란을 겪었던 그 때가 생각난다. 그 사건은 나의 고기동 겨울맞이 신고식이었고, '내년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미리 준비해야지'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모든 준비가 잊히고, 결국 매년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그럼에도 올해는 다르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아무 일 없길 바라며, 올 겨울은 잘 준비해서..